그날의 약속 - 7화: 숨겨진 과거
교무실을 빠져나온 윤재와 도혁은 여전히 사진 속 드러난 얼굴과 서윤희의 말을 곱씹으며 복도를 걸었다. 이제 그들은 단순히 귀신의 장난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일이 학교와, 그리고 김태원이라는 인물과 깊이 얽혀 있었다.
“김태원이라…” 윤재가 사진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왜 서윤희와 관련이 있는 거지?”
도혁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도 서윤희를 잘 몰랐잖아. 김태원이 누군지도 모르고… 근데 분명 뭔가 큰 비밀이 있는 것 같아.”
윤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기록실로 가자. 김태원의 이름을 찾아야 해.”
기록실에서의 발견
늦은 밤, 학교 기록실은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적막했다. 오래된 서류와 먼지 냄새가 가득한 방 안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윤재와 도혁은 서둘러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다!” 도혁이 낡은 학생기록부를 들어올렸다. 표지에는 김태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윤재는 서둘러 그것을 펼쳤다.
기록부에는 김태원이 학교를 다녔던 시절의 간단한 정보와 성적, 그리고 동아리 활동 내역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 도달했을 때, 윤재는 숨을 멈췄다.
퇴학 사유: 폭력 사건 및 학생 실종과의 연관성.
“실종?” 도혁이 기록을 읽으며 당황한 얼굴로 윤재를 바라봤다. “그럼 김태원이 누군가를 해쳤다는 거야?”
윤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실종된 학생이 누군지는 안 나와 있어. 하지만 이건 단순한 퇴학 사유가 아니야. 뭔가 더 있어.”
그는 기록부의 한쪽 모서리에 작은 글씨로 적힌 메모를 발견했다.
사건 당일, 서윤희와 마지막으로 목격됨.
“서윤희?” 도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외쳤다. “그럼 김태원과 서윤희가 서로 알고 있었던 거네.”
“단순히 아는 정도가 아니야.” 윤재는 사진을 다시 떠올리며 말했다. “이 둘이… 아마도 함께 얽힌 비밀이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게 우리를 지금 이 상황으로 끌어들인 거고.”
과거의 그림자
기록실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윤재는 다시 일기장을 꺼내 들었다. 김태원의 이름을 세 번 부른 이후에도, 일기장은 여전히 차갑게 식지 않았다.
“이건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윤재가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해?” 도혁이 물었다.
“과거를 알아내야 해. 김태원이 어떤 일을 저질렀고, 서윤희와 어떤 관계였는지. 그게 이 모든 걸 끝낼 수 있는 방법일 거야.”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동시에 그쪽을 바라봤다.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곧 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누구야?” 도혁이 소리쳤다.
그림자가 드러난 인물은 바로 학교 경비원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이상하게 굳어 있었고, 눈은 초점이 맞지 않았다.
“너희가 여기 왜 있지?” 경비원이 차갑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린 듯 기괴하게 들렸다.
윤재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우린 그냥… 여기서 뭔가 찾고 있었어요. 실종 사건에 대해.”
경비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표정을 바꾸더니, 낮게 웃기 시작했다.
“실종? 그건… 너희가 감당할 일이 아니야.”
그 순간, 경비원의 손이 서서히 들리며 복도에 검은 안개가 퍼지기 시작했다. 안개는 두 사람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도망쳐!” 윤재가 소리쳤다.
도망치는 그들 앞에 검은 안개가 막아서고, 검은 안개는 서서히 형체를 갖추더니, 시체같은 얼굴로 그들 앞에 나타났다.
윤재와 도혁의 귓가에는 뚜벅뚜벅 울리는 발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져 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발걸음이 바닥을 밟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바스락거리는 종이나 부서진 뼈를 짓이기는 소리처럼 들렸다.
복도는 이제 현실감이 희미해졌다. 벽에 걸린 창문들은 어둠으로 뒤덮여 어디서도 빛이 새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검은 안개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안개의 흐름은 뱀처럼 바닥을 감싸며 윤재와 도혁의 발목을 노렸다.
안개가 농도 짙은 어둠으로 변하자, 그 속에서 하나의 형체가 불쑥 튀어나왔다. 형체는 마치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건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얼굴은 회색빛으로 검게 물들어 있었고, 눈은 텅 비어 하얗게 빛났다. 입이 벌어지자 안에서 고르륵, 마치 썩은 물이 흐르는 듯한 끈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캬아아악—"
형체가 비명을 지르자 날카롭고 불협화음 같은 음파가 복도를 울렸다. 마치 누군가가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 동시에 고장난 기계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뒤엉켜 귀를 찢어발겼다. 소리는 그들의 머릿속까지 파고들며 귓가를 울려, 도망치려는 두 사람의 균형을 흐트러뜨렸다.
형체의 손가락이 뻗어나갈 때마다 길고 날카로운 손톱 끝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손끝은 윤재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고, 그의 얼굴 앞에 멈춰 섰다. 손톱 끝에서 스르륵—실처럼 가느다란 안개가 흘러내려 그의 볼을 스치자, 얼음처럼 차가운 한기가 온몸을 관통했다.
“나갈 수 없어.”
형체의 목소리는 공간 전체를 울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마치 수십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말을 하는 것 같았고, 각기 다른 음조와 속도로 흘러나와 듣는 이의 심장을 짓눌렀다. 목소리 속에 섞인 울음소리, 비명, 그리고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일그러져 섞이며 주변 공기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이제 복도의 끝에는 더 이상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검은 안개는 그들의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았고, 사방 어디를 봐도 동일한 어둠만이 감돌았다. 공간이 왜곡된 듯 벽이 비틀리고, 천장에 걸린 형광등은 꺼질 듯 깜빡이면서 기괴하게 ‘지지직’ 소리를 냈다.
“도혁아… 여기서 나가야 돼…!”
윤재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의 눈은 결연하게 빛났다. 어둠이 그들의 발밑까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도혁의 얼굴엔 공포가 서렸고, 그의 목소리도 떨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 형체가 다시 고개를 들며 웃었다. 그 웃음은 한껏 느리고 불쾌하게 울려 퍼졌다.
형체의 입이 더 크게 벌어졌고, 그 안에서 끝없는 어둠과 기묘한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검은 안개는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속도로 그들을 삼키려 하고 있었다.
기적의 빛
형체의 입이 더 크게 벌어지고, 그 안에서 어둠이 파도처럼 몰려오며 윤재와 도혁을 삼킬 듯한 순간, 윤재의 손에 들린 일기장에서 갑자기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윤재는 당황하며 손에 든 일기장을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감촉만 느껴졌던 일기장이 이제 따뜻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빛은 점점 강해지며 책의 갈라진 틈 사이로 뻗어나갔다.
검은 안개는 그 빛을 감지한 듯 움찔거리며 형체를 흐트러뜨렸다. 안개 속에서 들리던 기괴한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동시에 멈췄다.
“그게 뭐야?!” 도혁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윤재는 일기장을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빛이 더 강렬해지며 주변을 감쌌다. 그 빛은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힘을 품고 있었다.
그 순간, 일기장의 빛이 폭발하듯 퍼지며 복도를 가득 채웠다. 마치 낮의 태양이 한순간에 떠오른 것처럼 모든 것이 하얗게 물들었다. 빛은 검은 안개를 찢어내듯이 뚫고 나갔고, 형체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형체는 몸부림치며 저항했지만, 빛 앞에서 점차 그 형체가 희미해졌다. 안개는 녹아내리듯 사라졌고, 복도는 마치 폭풍이 지나간 후처럼 고요해졌다.
윤재와 도혁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일기장은 여전히 윤재의 손에 들려 있었지만, 이제는 빛을 잃고 평범한 책처럼 보였다.
“끝난 건가…?” 도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윤재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일기장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진실을 밝히기 전까지,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 아니야.” 윤재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는 도혁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야. 이제 진실을 찾아야 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결의를 다졌다. 복도는 다시 어두웠지만, 그들 곁에는 더 이상 그림자가 맴돌지 않았다.
미완성된 퍼즐
두 사람은 가까스로 복도를 빠져나와 기숙사로 돌아왔다. 도혁은 헐떡이며 침대에 앉았고, 윤재는 손에 쥔 기록부를 내려다보았다. 김태원, 서윤희, 그리고 실종 사건.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직 모자란 조각이 있어.” 윤재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 순간, 그의 손에 쥔 기록부가 서서히 검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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